[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⑫]D-Day 초읽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더는 훈련 못 받겠다. 실미도에서 나가겠다.”
1971년 5월 어느 날. 산악 구보 훈련을 받던 정○○ 공작원이 산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뛰어들더니 식칼을 집어 들었다. 그는 식사 준비에 한창이던 기간병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더는 훈련을 받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실미도 부대 입대 당시 약속했던 훈련 기간(6개월)이 2년 반쯤 더 지난 때였다. 동료 공작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정 공작원을 진정시킨 뒤에야 그는 울부짖으며 칼을 내던졌다.파워볼


“살길은 실미도 탈출뿐”
실미도 부대에선 하극상이나 탈영 등을 저지른 공작원은 동료를 시켜 때려죽이는 게 다반사였다. 공작원 6명이 동료의 몽둥이찜질로 숨졌다. 이번에는 교육대장이 정 공작원 앞에 대검을 내던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지시였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정 공작원은 울음을 터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죽더라도 북에 가서 김일성 모가지를 따고 죽겠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교육대장은 대검을 거뒀다. 반기를 든 공작원이 처벌 없이 복귀한 건 처음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묵인되었지만, 부대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만 갔다. 누구나 이 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모두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았다.”(양○○ 기간병 회고록)

8월 25일 실미도 야산에서 바라본 해변. 멀리 무의도가 보인다. 우상조 기자
8월 25일 실미도 야산에서 바라본 해변. 멀리 무의도가 보인다. 우상조 기자


부대 심상찮았지만 “기다려라”
실미도 부대의 파견대장·교육대장 등도 부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1970년 하반기부터 상부에 “출구 전략을 마련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남북 관계가 개선돼 실미도 부대의 목표였던 북한 침투 공작 필요성이 없어졌다면 부대를 해체하자는 건의였다. 공작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거나 군의 부사관으로 임관시켜달라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인간 병기’로 키운 공작원들을 모두 사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보고가 있었다고 주장한다.FX마진거래

부대 해체 건의 관련 보고는 공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2006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나온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의 진술이다.

“실미도 부대가 공군 소속이었지만, 공군이 자체적으로 부대를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창설한 부대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공작원들의 신분은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71년 1월쯤 중정과 협의를 하도록 정래혁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는데, 장관은 ‘알았다, 연구해 보자’고만 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정 장관을 찾아갔지만 ‘선거철이라 바쁘니까 10월까지 기다려라, 그때 가서 해결해주겠다’고 답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 장관은 이후락 중정부장에게 실미도 부대 해체 안 등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대해 정 전 국방부 장관은 “김두만으로부터 실미도 부대 해체 등의 건의를 받은 적 없고, 김두만이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가에 속았다” 배신감
중정은 실미도 부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실미도 부대 교육대장이 공작원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공작원들은 모든 탄원이 거부당했다고 생각했고,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깊어져 갔다.

1971년 8월 20일. 드디어 실미도에 ‘시한폭탄’이 장착된다. 공작원 8명이 외부에서 구해온 소주를 몰래 마시다 적발돼, 공작원 전체(24명)가 약 40분 동안 집단 구타를 당하는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 가혹 행위로 심○○ 공작원이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심 공작원을 옆에 뉘어 놓고 모인 공작원들은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털어놨고, 탈출 논의로 이어졌다. ‘모든 공작원이 실미도를 탈출한 뒤 억울한 사정을 서울의 높은 사람에게 알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기간병 죽여야 우리가 산다”
“서울 중앙청에 가서 국무총리를 만나 4년 가까이 고생한 내용과 국가에 배신당한 사실을 직접 호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임○○ 공작원·재판 기록)
“사령부나 청와대에 가서 실미도의 실정을 폭로하려고 했습니다.”(이○○ 공작원·재판 기록)
“중앙청 광장이나 시청 광장에서 휴대하고 있던 총기를 땅에 놓고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폭로하고 후배들에게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당부한 뒤 그 자리에서 자폭하려 했습니다.”(김○○ 공작원·재판 기록)
공작원들이 잡은 D-Day는 1971년 8월 23일 월요일. 눈앞의 무장한 기간병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였다. 이들이 공작원 24명의 탈출을 눈감아 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려면 기간병을 모두 죽여야 한다.” “죽이지 말고 감금한 뒤 탈출하자.” 공작원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다음 회에서 계속.동행복권파워볼


※본 기사는 국방부의 실미도 사건 진상조사(2006년)와 실미도 부대원의 재판 기록, 실미도 부대 관련 정부 자료, 유가족·부대 관련자의 새로운 증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심석용·김민중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지난 기사〉
#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
https://news.joins.com/issue/11272
①50년 전 울린 총성의 진실은?…마침표 못 찍은 ‘실미도’
②시민 탄 버스에서 총격전···결국 수류탄 터트린 실미도 그들
③실미도 부대 만든 그 말…“박정희 목 따러 왔다”
④실미도 31명은 사형수? 수리공·요리사등 평범한 청년이었다
⑤기관총탄이 발뒤꿈치 박혔다, 지옥문이 열렸다
⑥1년 반 동안의 지옥훈련…北 보복위해 백령도 향한 특수부대
⑦”때려죽인뒤 불태웠다” 훈련병의 처참한 죽음
⑧민가 숨어 소주 마신 죄, 연병장서 몽둥이에 맞아죽었다
⑨”못 참겠다···섬 탈출했다가 걸리면 자폭하자”
⑩집단 성폭행 터지자, 내놓은 대안이 ‘집단 성매매’
⑪”김일성 목 따야한다며 묘 파헤쳐 해골물 먹였다”

[앵커]

북한의 최근 소식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사과 수확이 한창인 농장 모습이 북한 매체의 전파를 탔습니다.

연이은 태풍 피해를 겪었는데 올해 사과 농사가 잘 됐을까요?

북한의 사과밭 풍경 함께 보시죠.

[리포트]

가을 햇살을 한껏 머금고 사과들가지가 부러질 듯 주렁주렁 달린 사과들.

평양의 대동강 과수종합농장입니다.

사과 따는열매가 한창 여물 무렵 들이닥친 태풍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작년보다 착과율이 1.3배 정도 높다고 합니다.

[“이번에 정말 사과가 정말 많이 달렸습니다. 따도 따도 끝이 없습니다.”]

[“한 나무에 200알 정도. 많이 달렸습니다.”]

약 뿌리는토양을 분석해 질소비료와 인비료를 적절히 주어 나무 영양 상태를 개선했기 때문입니다.

농장별 경쟁제도 도입도 생산량 증가에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중앙TV : “이번 경쟁 총화에서 우승의 자리는 문제없다는 듯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이 어려있습니다.”]

[리정산/과수연구소 소장 : “그 전과 달리 자기 담당 포전에서 누가 더 수확고도 높이며 누가 더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는가 경쟁 열의가 대단히 높습니다.”]

수확이 끝날 무렵 맛과 수분, 향을 평가하는 군중심사가 열립니다.

12월에 열리는 과수부문 경쟁총화모임에서는 군중심사결과와 생산량을 종합해 농장별 순위가 발표됩니다.

작년에 아쉽게 2위를 차지했던 강원도 고산과수종합농장은 지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향복 : “쉬는 날이건 명절날이건 이 과일나무 밑에 많은 거름을 묻었습니다. 이 과일나무 한알 한알, 이 과일이 우리 땀방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조선중앙TV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품종이 500여 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철갑상어·생선 통조림 선호…바뀌는 식생활

[앵커]

최근 북한은 매체를 통해 주민들의 식생활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점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식재료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철갑상어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함께 보시죠.

[리포트]

평양의 만수교 고기상점입니다.

준공식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기도 한 이곳은 평양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고 하는 대표적인 고기 유통 센터입니다.

[최은희 : “지난 8년간 우리 상점에서는 연 500여만 명의 각 계층 근로자들에 대한 봉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조를 유유히 헤엄치는 이 물고기, 바로 ‘철갑상어’입니다.

2009년 북한이 양식에 성공한 뒤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한 어종입니다.

회로 먹거나 찜으로 요리합니다.

손님이 수조에서 살 생선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건져 올려 살아있는 상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김경일/판매원 : “(물고기를) 집에 가져가겠다 하면 물고기를 산 채로 가져가게 하는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좋다고 하시면서 손님들이 산 물고기를 많이 사갈 수 있기 때문에 수조가 비지 않게 제때 물고기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잘 세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철갑상어는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데요, 그럼에도, 일반 노동자 월급을 감안하면 북한의 고위층들이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어나 송어, 임연수 등 다양한 어류 가공식품도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백리향/판매원 :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여기 물고기 통조림 매대를 돌아보시면서 다 우리의 것이라고 매우 만족해하셨습니다.”]

북한 매체는 어류뿐만 아니라 돼지, 오리, 닭 등 육류 통조림도 주부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KBS

“아주 튼튼하다 느껴” 재검사 결과는 함구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위치한 백악관 웨스트윙 현관 앞을 해병대원이 지키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위치한 백악관 웨스트윙 현관 앞을 해병대원이 지키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자신했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제 투약도 모두 중단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밤 폭스뉴스 ‘터커 칼슨 투나잇’에 화상으로 출연해 “지금 나는 약을 먹지 않는다”며 “약 8시간 전부터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주 튼튼한 상태(I feel really, really strong.)”라고 거듭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송 인터뷰에 전화 통화가 아닌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2일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월터 리드 군병원에 입원해 사흘 간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그는 리제네론사가 개발한 항체 치료제와 함께 길리어드사이언스사의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스테로이드 소염제인 ‘덱사메타손’ 등을 투약 받았다. 특히 리제네론의 치료제에 대해선 7일 트위터에 영상 메시지를 올려 “믿을 수 없었다. 즉시 상태가 좋아졌다”며 “나를 치유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입원 당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스스로 활력 있게 느껴지지 않았고, 미국의 대통령답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호흡하는 데 불편함은 없었으며 하루 만에 컨디션을 회복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료진이 내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사흘 반정도 입원하게 했지만 나는 둘째 날부터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느꼈고, 병원을 떠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건강을 과시하고 있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완치 판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또 받았다고 밝혔으나 결과를 모호하게 언급했다. 그는 “다시 검사를 받았다. 숫자를 보지는 못했지만 난 다시 검사를 받았고, 내가 (바이러스 수치의) 바닥에 있거나 (바이러스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어두운 안색이나 숨 가쁜 목소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 중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거나 가볍게 기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CNN 방송 등은 익명의 백악관 당국자를 인용, “대통령이 숨 쉬기 불편해 보일 때가 있으며 여전히 건강 정보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다만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ㆍ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이 회복할 때 기침 증상이 지속될 수 있고, 심지어 회복한 후에도 한동안은 가벼운 숨 가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즐겨찾던
버터구이 알감자 든든한 간식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기도 했던 감자
메인요리 가니시로, 스튜의 속재료로

다이닝에서 재해석한 감자칩
다이닝에서 재해석한 감자칩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항상 먹는 간식이 있다. 버터 향 솔솔 나는 짭조름한 버터 감자 구이이다. 다양해진 휴게소 군것질 음식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명실공히 휴게소의 대표 간식이다. 감자는 크게 점질 감자와 분질 감자로 분류하고 전분의 함유량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오늘 김 셰프와 함께 만들 요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감자를 활용하는 스위스 대표 감자 요리 ‘뢰스티’다. 
#고속도로 구운 알감자의 추억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여행을 자제하고 있지만 지난해만 해도 어여쁜 갈색으로 물드는 가을 산을 보러 나들이를 종종 가고는 했다.

긴 여행을 준비하며 즐길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르는 일이다. 고속도로 음식이야 어떨지 뻔하지만 그게 또 그 뻔한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점은 참 재미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속도로 휴게 음식이 생겼지만 어릴 적 대표적인 메뉴는 버터구이 알감자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사실 감자를 주식이나 간식으로 자주 먹은 세대는 아니다. 피자나 햄버거, 달콤한 과자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감자를 간식으로 먹던 추억은 별로 없다. 그런 내게도 고속도로 감자 버터구이는 항상 구매목록 1순위였다. 노릇하게 구워진 감자 위에 버터 향(아마 마가린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과 파슬리 가루, 그리고 살짝 짭조름하다고 느낄 정도의 간은 간단한 간식으로도 또 긴 여행길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요리수업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요리사의 가치에 대한 예시로 고속도로 감자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삶은 감자를 마가린에 버무려 구워 소금, 파슬리 가루를 뿌려 컵에 내어 나가면 ‘고속도로 구운 알감자’이다. 하지만 베이컨과 우유를 넣은 물에 감자를 삶아 준 후 건져 정제 버터를 두르고 오븐에 노릇하게 굽고 나가기 전 신선한 로즈메리를 뿌려 나가면 요리사가 만든 ‘로즈메리 향의 버터 감자’로 표현된다. 겉모습은 비슷한 구운 알감자이지만 약간의 식자재와 잠깐의 관심으로 고속도로 휴게 음식인 5000원짜리 알감자가 1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스테이크 옆에 당당히 자리 잡는 멋진 요리로 탈바꿈할 수가 있다. 이것이 요리사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뢰스티
뢰스티

#세계인이 사랑하는 감자

감자는 정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많이 먹는 식자재가 아닐까 싶다. 쌀이나 곡류가 주식인 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이 감자요리가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포진하고 있다. 하물며 주식이 아닌 우리에게도 감자는 훌륭한 탄수화물 섭취의 일등공신인 식자재이다. 흔히 이런 감자를 구황작물이라고 하는데 가뭄이나 장마 등 농사가 잘되지 않았을 때 주식 대용으로 먹었던 조, 피, 기장, 메밀, 고구마, 감자 같은 작물을 그렇게 불렀다. 비황작물이라고도 하며 예전에는 가난한 농민들의 끼니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슬프지만 아름다운 식자재가 아닐까 싶다.

감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흰 감자, 붉은 감자, 자주감자이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감자는 대부분 흰 감자다. 종자는 수미, 대지, 대서, 남작이 있는데 그중 수미 감자가 고랭지에서 잘 자라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할 수가 있다.

요리사의 관점에서 감자는 크게 점질 감자와 분질 감자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남작 감자가 분질, 수미 감자가 점질 감자다. 감자의 주요 성분인 전분 함량의 차이에 따라 나뉘며 분질 감자는 감자 내 전분 성분이 높은 것을 말하고 점질 감자는 상대적으로 전분 성분이 낮다. 분질 감자는 수분이 낮아 익히면 보슬보슬해지는 경향이 있어 우리가 흔히 아는 매시트포테이토에 아주 적합하다. 점질 감자는 수분이 많고 전분 양이 적은 대신에 단백질이 많아 과육이 살짝 노란 편이다. 삶거나 찐 후 수프나 샐러드, 스튜 등에 사용하면 아주 좋다.

#다양한 감자요리

감자는 나라마다 재미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메인 요리의 훌륭한 가니시로, 스튜 요리의 빠질 수 없는 속 재료로 사용돼 감자 자체가 주인공이 된다. 프랑스만 해도 감자가 메뉴의 명칭이 된 요리가 엄청 많다. 우리가 아는 감자튀김인 폼므 프리츠부터 시작해서 폼므 베르니, 폼므 안나, 폼므 도피노아주, 폼므 듀세스 등 조리법과 모양에 따라 다양한 감자 요리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감자가 들어가는 감자 뇨키, 스페인에는 토마토소스와 함께 먹는 전통 요리인 파타타스 브라타스, 스위스에는 한국의 감자전 같은 뢰스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자전, 감자채 볶음, 감자떡처럼 주식 이외에도 반찬, 간식으로 폭넓게 활용되며 사랑받고 있다.

오스테리아 주연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뢰스티 만들기

<재료>

감자 1개, 마늘 1톨, 달걀 1개, 가루 파르메산 치즈 1큰술, 피자 치즈 1큰술, 버터 1큰술, 베이컨 2줄, 소금 조금, 다진 양파 1큰술, 기름 50mL

<만드는 법>

① 감자는 얇게 채 썰어 준 후 다진 마늘과 함께 섞어 준다. ② 다진 양파 1큰술, 다진 베이컨도 섞어 준 후 소금을 뿌려준다. ③ 감자의 수분이 빠지기 전 가루 파르메산 치즈를 버무려 준다. ④ 코팅된 프라이팬에 감자를 넣고 노릇하게 구워준다. ⑤ 뒤집기 전에 버터를 감자 위에 군데군데 올려 은은히 녹아 스며들게 열을 가해 준다. ⑥ 반대쪽도 뒤집어 노릇하게 익혀 준 후 뢰스티 위에 피자 치즈와 계란 프라이를 얹어 준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굿바이 대도시
감염병 취약한 ‘3밀’ 떠나는 사람들
아파트·사무실·대중교통 선호 줄고
재택·주택·자가용으로 전환 움직임
올 초 대도시 떠난 김영길씨 가족
넓은 집과 업무공간, 영화방에
아이들 학교 못 가도 놀 곳 충분
부부 “코로나19 이후 더욱 만족”
“밀집·밀접·밀폐 피하면서도
인프라 누리는 새 라이프스타일”
“중규모 도시에 상상력과 개성을”

지난달 28일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 사는 김영길씨네를 찾았다. 4인 가구인 김씨네는 올해 3월 서울을 떠나는 결정을 하며 코로나 시대에 업무와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녹지를 얻었다. 김씨의 두 아이가 집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달 28일 강원 춘천시 우두동에 사는 김영길씨네를 찾았다. 4인 가구인 김씨네는 올해 3월 서울을 떠나는 결정을 하며 코로나 시대에 업무와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녹지를 얻었다. 김씨의 두 아이가 집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밀집·밀접·밀폐를 피할 수 없는 대도시의 매력도가 점차 낮아지고 넓은 공간과 녹지 이용이 가능하면서도 방역에 효율적인 중규모 도시로 분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대도시의 주거, 사무실, 대중교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 움직임을 취재했다.

영상감독 이경아(26)씨는 올해 코로나19를 경험하며 집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각자 직장과 학업으로 10년 이상 뿔뿔이 흩어져 산 다섯명의 가족은 갑작스레 아파트 한 공간에 온종일 머물러야 했다. 매일 직장에 나가던 아버지와 여동생은 재택근무를 했고, 외국에 유학 간 남동생도 귀국했다.

가족은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다섯명이 종일 생활하기란 50평 남짓 아파트도 넓지 않았다. 이씨는 영상 작업 공간이 필요했고, 패션 디자이너인 여동생은 큰 책상이 필요했다. 부족한 공간도 고민거리였지만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경아씨는 29층 아파트에서 좀처럼 바깥에 나가지 못했다. 가족은 내년 3월 만료되는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새 주거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경아씨네는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전세를 한번 더 사는 것을 마지막으로 공동주택 생활을 종료하기로 했다. 가족의 주말농장이 있는 경기 양평에 내년부터 단독주택을 짓기로 했다. 양평역은 서울역과 케이티엑스(KTX) 강릉선으로 50분 거리다. 프리랜서인 경아씨는 양평에서 일주일에 두어번 서울에 있는 작업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새로 짓는 주택엔 각자를 위한 독립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아버지는 독서 공간, 어머니는 재봉틀 취미를 위한 공간, 경아씨는 창고형 스튜디오를 갖기로 했다. 경아씨는 “코로나를 계기로 일과 생활 둘 다 가능한 집, 가족 간에도 개별 공간이 있는 집, 녹지 공간이 있는 집을 선호하게 됐다”며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처럼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언택트 라이프스타일의 편리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그 삶의 방식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서 올해 ‘영끌대출’ ‘패닉바잉’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한편에서는 감염병을 계기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생겨났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성실한 도시생활자의 근로소득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10억원을 올여름 돌파했고, 평생 짊어질 무리한 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또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이 장기화되고 감염병 위기가 반복되면서 대도시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파트·사무실·대중교통 떠나는 사람들 서른아홉살 김영길씨는 올해 3월 서울을 떠나는 선택을 한 뒤 크게 만족하고 있다. 4인 가구인 김씨네는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세입자로 살았지만 9살, 5살 자녀 둘을 마음 편히 키울 환경이 아니었다. 아래층에선 시시때때로 층간소음 항의를 해왔고, 새벽에도 소음과 주차 문제에 시달렸다. 아이는 아토피 피부염이 생겼다. 가족은 대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김씨의 회사가 있는 서울 강남권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부지를 찾았다. 20여곳 발품을 판 끝에 강원 춘천에 3층짜리 주택을 지었다. 부부가 모은 자금 2억원에 대출 50%로 예산 4억원을 마련했다. 130여평(430㎡)의 터에 3층 건물 본채(59평)와 1층 별채(25평)가 딸린 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 서울의 높은 집값을 생각하면 앞으로 서울에 안정된 주거를 마련하기 요원한데, 부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자가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춘천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이사 이후 밀집한 곳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대형 영화관에 갈 것 없이 3층 다락방을 가족끼리 넷플릭스 영상을 보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사 이후 때마침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았는데, 아이들은 마당 있는 넓은 집에서 뛰어놀았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씨와 디자이너인 아내는 종종 자택에서 재택근무를 하는데, 방이 다섯개라 업무를 위한 각자의 공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이날 오후 부부의 두 자녀는 마당 모래놀이터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다. 집 한쪽엔 언제든 녹지를 누릴 화단이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방역에서 자유로운 가족만의 공간이다. 부부는 서울의 혼잡이 싫었지만 사회기반시설이 없는 농촌도 내키지 않았다. 김씨는 “여기는 걸어서 마트 2분, 초등학교 3분이다. 동네 소아과도 걸어서 가고 큰 대학병원은 차로 5분”이라며 “도시 인프라도 누리면서 공동주택을 떠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대형 사무실, 역사 속으로

김씨는 요즘 일주일에 나흘은 서울 강남구 사무실로 출근하고 사흘은 집에서 일한다. 이사와 함께 구입한 테슬라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20분 안팎이다. “고속도로에선 운전 피로감이 적어 유튜브로 강의를 들으며 간다”고 했다.

올해 재택근무를 한 상당수 직장인들은 매일 회사로 출퇴근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 직장과 근접한 거리에 주거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비용을 치러야 할 부담도 함께 줄었다. 실험적으로 시도했던 재택근무는 앞으로 많은 기업에 안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내놓은 ‘재택근무 활용실태 설문조사’를 보면, 올 8월 5인 이상 사업장의 인사담당자 400명 중 절반 규모인 48.8%가 재택근무를 실시한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의 규모별·유형별 편차는 크지 않았다. 이들 기업 중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효율이 높아졌다’ 항목에 “매우 그렇다”와 “그런 편이다”라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은 66.7%였다. ‘코로나19 종식 뒤에도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하겠다’는 응답은 51.8%였다.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가 상시적 근무 방식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 근처의 1인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업무공간 임대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집무실’. 집무실 페이스북 갈무리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 근처의 1인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업무공간 임대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집무실’. 집무실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 도심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이 직원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사무실을 분산시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통신회사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 6월 서울 을지로 사옥에 집중돼 있던 직원 일터를 서울 전역과 인근 도시로 분산시키는 ‘거점 오피스’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껏 이 회사는 네곳의 ‘거점 오피스’를 운영해왔는데, 앞으로 직원들의 거주지가 있는 서울 외곽까지 이를 확대하겠다며 “굳이 을지로 본사까지 나올 필요 없이 가까운 거점 오피스로 가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롯데쇼핑도 지난 7월부터 직원들이 거주지와 가까운 거점 사무실에서 일하며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의 경기 고양 일산점, 안양 평촌점, 인천터미널점 등 5곳에 스마트오피스를 마련해 직원들이 현장 근무 뒤 본사까지 돌아올 필요 없이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고 퇴근하도록 했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 중에 마땅한 업무 공간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사무실 임대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 8월 창업한 스타트업 ‘집무실’은 집 근처 사무실이란 뜻으로, 거주지 인근 1인 사무실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늘 것이라 예측하고 공간 임대업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는 새 근무 방식과 이로 인한 업무지의 변동이 더욱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정보기술(IT)기업 후지쓰는 2022년까지 도쿄 본사 사무실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재 250여개 있는 일본 전역의 위성 오피스를 늘리기로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서울 주요 도심의 사무실 공실률은 늘고 있다. 한국감정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보면, 강남의 사무실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 8.1%에서 꾸준히 하락하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본격화된 올해 2분기에 8.7%로 높아졌다.

직장인들이 대형 건물에 모여 하루의 생활을 같이하는 업무 방식이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은 여시재 누리집에 쓴 글 ‘일과 오피스의 미래’에서 “300년 전 산업혁명 때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사무실 노동이 코로나19를 맞아 전환의 기로에 섰다. 고층빌딩 사무실에 인력을 끌어모으던 방식이 저물 것”이라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고도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인력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노동자들은 출퇴근 편리를 위해 대도시 사무실 근처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직주근접’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 더 이상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도심에 살 이유를 찾기 어렵다. 주거지가 일터인 ‘직주일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연구소 랩2050은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내리막 시대: 유통기한 끝난 대도시는 어디로 갈까’를 주제로 오는 14일 토크 콘서트를 연다.

아파트 과연 괜찮을까

올여름 서울 구로구 등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환기구 등이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형 단지에 확진자가 발생하자 수백명이 우르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고, 감염을 걱정한 청소업체들이 해당 아파트의 쓰레기를 며칠간 수거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의 일상생활 전체가 마비됐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 같은 공동주택을 벗어난 주거 방식을 고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축계 현장에서 느끼는 바는 더욱 직접적이다. 단독주택 건축업체 ‘공간제작소’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올해 건축박람회나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는데 오히려 계약량은 늘었다”며 “학교 못 보내 집에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정에서 도심 외곽에 넓은 집을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특히 많다”고 했다. 이어 “요새 교통이 좋아져 서울 외곽 지역의 출퇴근 시간이 단축된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케이티엑스 확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추진 등 교통수단이 발달해 경기 외곽이나 강원·충청의 수도권 근접 지역에서 서울 도심 사무실 밀집 지역까지 이동 거리가 짧아진 점도 주거지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만난 김영길씨네 자택. 4인 가구인 김씨네는 올해 3월 서울을 떠나는 결정을 하며 밀집을 피하면서도 병원 등 도심 인프라와 접근성이 좋은 주거 환경을 누리고 있다. 사진은 김씨네 3층 주택과 서울 출퇴근용 자율주행차.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만난 김영길씨네 자택. 4인 가구인 김씨네는 올해 3월 서울을 떠나는 결정을 하며 밀집을 피하면서도 병원 등 도심 인프라와 접근성이 좋은 주거 환경을 누리고 있다. 사진은 김씨네 3층 주택과 서울 출퇴근용 자율주행차.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만난 김영길씨와 딸.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만난 김영길씨와 딸. 춘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수도권의 단독주택 건설은 증가 추세다. 올해 국토교통부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을 보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단독주택(다가구 제외 순수 단독주택)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전 1월 823호, 2월 1019호였다. 이후 점점 늘어 3월 1227호, 4월 1174호, 5월 1043호, 6월 1273호, 7월 1383호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셧다운이 장기화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국제사회 주요 대도시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임대료가 비싼 도심 대신 외곽 단독주택으로 이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위험이 중장기적으로 계속되면 이런 주거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사회기반시설과 가까운 도심 외곽 지역의 단독주택 가치는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고령화로 인구감소까지 본격화되면 대도시로의 접근이 쉬운 근교 단독주택이 자산으로 가치도 괜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밀 대중교통’ 회의론도

하루 평균 이용자 730만명, 출근 시 평균 이용시간 1시간27분, 환승 평균 1.3회.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시민들의 출퇴근 교통카드 이용 내역을 추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 2019) 정부가 권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실히 지키는 시민일지라도 대중교통에서 긴 출퇴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불안이 엄습한다. 옆사람의 호흡이 바로 내 볼에 닿을 정도로 붐비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지난 4월 설문조사(‘코로나19로 인한 통행행태의 변화’)를 보면, 대중교통 이용자의 35.8%는 코로나19로 대중교통에서 자가용으로 교통수단을 변경했다고 답했다. 이 중 향후 자가용에서 다시 대중교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2%, 계속 자가용을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9.2%였다. 자가용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대중교통으로 복귀하겠다는 응답자보다 2배 많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밀접한 채 상당 시간 머무는 대중교통은 감염증 확산을 계기로 이용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가용처럼 개인화된 이동수단을 선호하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김건우 카카오모빌리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밀도 이동수단인 대중교통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가장 거리가 먼 이동수단”이라며 “반복적으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 앞에서 지속가능한 이동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이동의 위기를 경험한 인구가 일상이 회복되어도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택근무 증가로 출퇴근을 위한 교통 이용은 줄어들더라도 “지금의 고밀도 대중교통에 대한 대안적 고민은 필요하다”고 했다.

붐비는 지하철 노선은 출퇴근 시간대의 이동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거리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티켓을 발급할 수도 있다. ​농촌 지역 주민을 위한 콜택시처럼 이용자들이 소규모로 탑승할 수 있는 ‘수요 응답형 대중교통’도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는 자율주행차 전용도로, 배달로봇용 도로의 출현 등으로 도로 모양새도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과밀한 서울 도심 일대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과밀한 서울 도심 일대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중규모 도시의 도약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람들은 밀집을 전제로 한 도시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는 “일정 수준의 인구 규모를 필요로 하는 산업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에도 어느 정도 모여 살아갈 것이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중소도시에 거주할 만한 여지가 과거보다 많아졌다. 한국의 중소도시가 갖는 경쟁력은 밀집도가 낮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몇년 전부터 도시계획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개발과 과밀로 인한 대도시의 부작용을 해결하면서도 생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자연친화적 ‘콤팩트 도시’(압축도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산업화 시대가 가고 새로 온 지식경제의 시대에선 공동주택, 대중교통, 대형 사무실처럼 인구가 고도로 밀접해 최대한의 생산력을 도출해내는 방식의 대도시 모양은 수명이 다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도시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는 “팬데믹과 기후변화까지 고려하면 사회 전체가 장기적 대응체계로 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구 감소, 저성장까지 생각하면 도시의 형태는 변화할 것”이라며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로 서울의 밀도가 경기도까지 확장 생활권으로 분산되는 방식이나 충청·강원까지 근수도권 (생활) 바운더리가 형성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밀집·밀접·밀폐를 피할 수 없는 대도시나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소멸 위험 지역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대도시는 30만~50만명 단위 ‘생활권 도시’로 분산될 것이다. 인구가 너무 적은 소멸 위험 지역은 방역과 복지시설이 집중된 콤팩트 도시로 통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직주(직장과 주거)일치가 특징인 생활권 도시는 일·주거·여가를 근거리에서 해결해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라며 “적당한 인구와 공간 밀도, 보행과 자전거, 지역 공동체는 코로나 이후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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