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미성년자들이 유튜브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조회수만 많이 받으면 큰 돈도 벌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도를 넘어선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파워볼게임

하지만 유튜브는 이런 문제를 제어할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조두순 아들입니다. 우리 아빠 건들지 마라’는 제목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실제로 조두순은 자녀가 없다.

해당 영상을 올린 건 초등학생으로 알려진 A군. 그는 영상에서 “조두순을 건드리면 내가 다 총으로 쏴 죽일 것”이라며 “조두순을 욕하는 사람들은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말했다. 높은 수위의 욕설도 쏟아냈다. A군은 이영상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단기간에 조회수를 끌어올렸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은 표면적으로는 성교육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성년자를 이용해 음란물에 가까운 성적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훈녀 여고생은 스킨십으로 남자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10대 여학생들, 몸 좋은 남자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10대 훈남, 훈녀가 서로의 몸을 간지럽혀 본다면’ 등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파워볼게임

영상에선 고등학생으로 소개된 이들은 교복을 입은 채 수위높은 스킨십을 하며, 성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이 채널의 구독자만 98만명에 달한다. ‘10대 훈남, 훈녀가 서로의 몸을 간지럽혀 본다면’ 영상의 경우 조회수가 437만건을 넘겼다.

유튜브에서 10대 미성년자 유튜버들의 음담패설, 욕설, 범죄자 옹호 등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어린 유튜버들이 이같이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는 이유는 조회수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유튜브 콘텐츠 경쟁이 격화될 수록 자극적인 소재로 조회수를 올리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유튜브는 머신러닝을 통해 부적절한 유튜브 콘텐츠를 검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확도가 떨어져 부적절한 콘텐츠을 일일히 파악해 걸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튜브측은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적절하지 못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삭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태훈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튜브 영향력이 커지면서 유튜버를 꿈으로 키우는 10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자극적인 소재로 조회수를 올리려는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며 “인터넷 윤리교육을 강화함과 동시에 유튜브에서 검열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23@heraldcorp.com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4] ‘만들어진’, ‘양식된’ 간첩

군사정권 시절에는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제주에는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그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현대사의 비극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파괴된 공동체와 인권의 회복을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변상철 기자]

1960년대까지는 북한에서 간첩이 정말로 많이 내려왔다. 물론 남한에서도 공작원을 보냈다는 기록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남파됐던 공작원, 간첩들은 대부분 체포되었고, 간첩으로서의 능률적 효과를 보지 못했다. 국정원 진실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쪽사회의 반공의식은 상당히 공고해졌다. 부모형제 혹은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의 집을 찾아갔다가 쫓겨나거나 신고를 당하는 일도 빈발했다”고 한다.(국정원 보고서, 학원간첩편 272쪽)이렇게 직파 공작이 실패하자 북한은 연고선 공작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즉 공작의 성과 미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들어와 북에서 직접 공작원을 파견하는 연고선 공작의 효용은 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직접 공작원을 남파하는 일이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북은 “1975년 연고선 공작을 중단, 그동안 양성한 남쪽 출신 공작원들을 모두 사회로 복귀”시켰다.(국정원 보고서, 학원간첩편 273쪽)파워볼

▲  침투 무장공비에게투항을 권하는 유인물
ⓒ 변상철

직파공작원을 상대체제사회로 보내는 비효율적인 공작은 남북 정보기관 모두가 가지는 고민이었다. 결국 남북 모두는 성과 없는 공작사업을 중단하기 위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합의, 즉 합의서의 3조와 같이 “쌍방은 북과 남 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 하였다.이 신사협정이 철저하게 지켜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한 당국의 간첩 적발 통계를 보면 실제 적발된 간첩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각각 1600명가량의 간첩이 적발되었던 것이 1970년대에는 681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에 적발된 간첩은 340명으로 다시 1970년대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1990년부터 1996년까지는 모두 114명으로 80년대의 3분의 1로 감소했다.

▲  수사관에게 연행되었던 옛 집 대문을 탁본하는 강희철 씨.
ⓒ 한톨

검거된 간첩의 수가 감소된다는 것은 체제의 안보가 안정적이라는 반증임으로, 국가안전보장의 입장에서 긍정적 신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지 않는 간첩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공안기관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북쪽에서 내려오는 간첩은 급격히 줄었지만 남쪽의 공안기관 규모는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의 경우 대공과를 신설하며 치안본부 대공분실(일명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하는 등 인원과 규모를 확장하였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내려오는 간첩을 막아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간첩이 내려오지 않자 조직의 존재이유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결국 공안기관은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 더 이상 간첩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이전에 체포 검거했던 실적 이상으로 간첩 검거수를 채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에 더해 ‘간첩 실적’을 독려하는 최고 권력자가 있다면 더욱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  1980. 9. 1 대통령에 취임하는 전두환
ⓒ 국가기록원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다름 아닌 1984. 1. 21 신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간첩대책중앙회의’다. 1968. 1. 21. 김신조를 비롯한 일련의 북한공작원들이 청와대 뒷산까지 내려와 대통령의 신변을 위협한 것을 계기로 매년 1. 21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대통령 주재로 각 기관 대공관계자들이 모인다. 그 해의 대공 업무에 대한 계획보고와 대통령의 격려가 이어지는 자리다.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 대책회의를 열며 각 군 지휘관, 치안 기관 관계자 등 수천 명을 모아두고 이런 말을 했다.

‘저놈들이 안 내려오면 좀 답답하죠. 내려와야 우리 군인들 전과 올리고 훈장 타고 진급되고 이런 기회가 생기기 않느냐.’

내려오지 않는 간첩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정부, 전과와 훈장, 진급을 위해 간첩이 내려와 주기를 바라는 정부. 전두환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비단 일반 개인의 사사로운 발언이 아니다. 당시 국민으로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권력이기에 사회적 불만과 정치적 불안을 이용하기 위한 시선전환용 성과가 필요했고, 이러한 전환을 위한 성과를 독촉한 것이다.

하지만 공안기관 입장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 남파공작원을 잡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대통령의 독촉은 결국 이전까지 점차 줄어줄던 간첩검거 수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졌다. 내려오지 않는 간첩, 그래서 희귀해진 간첩, 이러한 상황에서의 공안기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결과적으로 1980년대에 ‘만들어진’ ‘양식된’ 간첩이 많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그렇게 제주의 조작간첩 피해자들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실제 강광보씨의 말을 들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  강광보 씨의 무죄 선고가 있던 날 함께 축하해 주던 김평강, 오재선
ⓒ 변상철

강광보의 구술 = “내가 1986년도 사건인데, 나는 1월, 강희철, 오재선은 5월인가 6월, 이렇게 조작간첩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한 명도 조작간첩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어. 그러면 노태우가 된 다음엔 갑자기 조작간첩이 없어졌다는 말이잖아. 결국 무슨 말이냐… 85년, 86년에 간첩이 최고로 많이 들어왔다 이거거든. 조작간첩들이 참 많이 들어왔다는 건데 어떻게 보면 그 중에서 우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 간 거지. 우리 이전에 먼저 감옥에 들어왔던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시니까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았지.”

대통령의 발언과 이에 대한 각 정보기관의 실적 경쟁, 이에 따른 무리한 공안사건의 발생은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제주 역시 이런 국가의 시책과 공안기관의 경쟁으로 인해 조작간첩 피해자의 많은 수가 1980년대에 몰려있다. 앞서 말했듯이 제주에서 간첩으로 조작되었다 무죄가 된 사건은 14건(피해자는 39명)이다(2020년 시민단체 평화박물관 제주조작간첩 통계). 이들 중 1980년대에 간첩으로 몰린 사건은 6건(14명)으로 60년대 4건(피해자 12명), 70년대 4건(11명)에 비해 많다. 즉 이전 60년대나 70년대 보다 많은 간첩사건이 80년대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1986년을 끝으로 더 이상 간첩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광보씨의 말은 사실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렇게 간첩은 ‘만들어’졌다.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①] 쿠팡 알바 첫 날, 밥을 먹기 위해 달렸다

[김상현 기자]

“대학생이 하기에 꿀알바죠.”

흔히들 쿠팡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이런 말들을 듣고는 한다.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날짜도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 골라서 나갈 수도 있고,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이라고 임금 체불이 일어난 적도 없다. 식사도 제때 챙겨주니, 요즘 이만한 ‘괜찮은’ 알바가 없기도 하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알바몬’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쿠팡 알바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생이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권유한 것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시 나는 시에서 주관하는 과외 사업으로는 생활이 버거웠다. 공고는 많았고, 지원 방식도 간단했다. 정해진 휴대폰 번호에 양식만 맞추어 보내고 기다리면 쿠팡 물류창고 입사 지원은 끝났다.

언제 연락이 올까 전전긍긍하던 중에 내일 출근해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보내라는 문자도 덧붙여왔다. 나는 유경험자인 동생의 도움을 받아가며 쿠팡으로의 첫 출근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셔틀버스는 언제 오는지, 내려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는 정도였다.

이후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당시 다음 날은 주말이었지만, 쿠팡 물류창고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물류창고로

다음 날 아침 6시, 휴대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힘겹게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근처 모란역으로 향했다. 역에는 주말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등산객들이었지만, 주말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덕분에 역 주변부에 서 있었던 나는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제대로 잡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다행히도 나를 태우고 갈 셔틀버스는 무사히 도착했고 나는 셔틀버스를 타고 내가 가야 할 물류창고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긴장 속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내 또래도 있었고, 부모님뻘 되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르신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의 사람들도 버스에 올랐다.물류창고로 향하는 셔틀버스는 계속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실으려고 정차했다가 출발했다. 셔틀버스가 물류창고에 도착한 것은 내가 그 버스에 오른 지 1시간 조금 지난 뒤였다.

▲  쿠팡 물류센터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버스들.
ⓒ 김상현

도착하고 나니 많은 인파가 거대한 물류창고 앞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 대의 버스에서 내렸는데, 각각의 버스 앞에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붙여져 있었다.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 충주, 서울시 노원구 등등 전국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익숙한 사람들은 출근 수속을 알아서 끝냈지만,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쿠팡에서 제작한 출퇴근용 앱인 쿠펀치에서 계정을 생성하고, 창고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출근 버튼을 눌렀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는 책상 앞에서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김상현씨 계세요? 김상현씨?”

갑자기 이름이 불린 상황에 당황해서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네?”라고 대답하면서 우물쭈물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나를 불렀던 관리자는 명부에 서명하고, 각종 계약서에 사인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쿠펀치 앱으로만 출근 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수기 출퇴근 명부가 따로 있었다. 나는 이것 또한 작성해야 했다. 명부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 나누어져 구분되어 있었는데, 처음 온 내가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여성명부에서 이름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다 답답해하는 관리자에게 이끌려 남성명부에서 이름을 겨우 찾고 서명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근로계약서’와 ‘안전교육 이수 확인서’ 등을 작성했다. 나는 이 경험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알바 하면서 내가 ‘스스로’ 근로계약서를 확인하고 작성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했던 알바들은 근로계약서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사장님이 ‘알아서’ 보관해주는 그런 식이어서 실물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투입

▲  쿠팡 물류센터 전경.
ⓒ 연합뉴스

오전 9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좀 더 높아 보이는 관리자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을 주목시키더니 오늘 해야 할 작업과 관련된 여러 주의사항을 말했다. 마지막에 물건 처리량이 적다고 오늘은 좀 열심히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기존 노동자들은 일어나 물류창고 일을 하러 갔고, 나를 비롯한 신규노동자들은 사무실에 그대로 남았다.

마침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나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인원이 사무실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본 옆자리 사람은 “이 정도면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귀띔해주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많이 고용하는 쿠팡 물류창고의 특성상 매일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많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2020년,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쿠팡 창고가 지목되었다. 내가 다니던 물류창고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우리 창고의 신규 지원자가 확 줄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 신규 지원자들이 줄어들었지만, 신규 노동자들은 여전히 적지 않은 규모였다. 그리고 대부분 기존에 있던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리거나, 운영하던 가게가 망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에 남은 신규 노동자들에게 관리자는 점심시간은 언제인지 등 몇 가지의 추가 주의사항을 들려주었다. 휴대폰은 작업 현장으로 반입할 수 없고, 출퇴근 명부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일급 지급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관리자의 인솔 아래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물류창고 현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창고 내부는 매우 넓었고, 많은 물건들이 구획 별로 나뉘어 있었다. 지게차들이 돌아다니고, 컴퓨터 앞에는 여러 사람이 전산을 처리하고 있었다. 물건을 팔레트 위에 쌓고 쟈키라고 불리는 팔레트를 손으로 끌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리자는 창고 안으로 들어온 우리에게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환기시키고, 각각의 작업 파트에 사람들을 배정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다

나는 ‘2차 분류’라고 불리는 파트에 배정받았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QA’라고 불리는 파트에서 전산 처리된 물건을 가져와서 항목별로 분류된 팔레트 위에 쌓는다. 팔레트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것을 쟈키로 빼서 랩으로 감싸고 지게차가 처리할 수 있도록 지정된 자리에 가져다 두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첫날에 전산 처리된 물건을 팔레트에 분류하는 작업을 맡았다.

전산 처리된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는 2단 혹은 1단짜리 운반 카트에 실은 다음에 알맞게 팔레트 위에 분류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간단해 보였지만 의외로 많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간혹 무거운 물건이 나와 허리에 무리를 주기도 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물건을 분류하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에 시간을 버티는 것도 고되었다.

이후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고 쿠팡 일용직을 주말마다 나가게 되었을 때는 나머지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팔레트 위에 쌓인 물건을 정리하고 랩으로 칭칭 감는다. 마치 먹고 남은 음식을 랩으로 감싸는 작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가 랩을 감아야 할 것은 먹고 남은 음식 부스러기가 아니라 내 키만큼 쌓인 여러 잡화였지만.

팔레트 위에 올라간 물건들을 꼼꼼하게 랩으로 감싸기 위해서는 우선 허리를 숙여서 팔레트 끝에 랩을 묶어야만 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 팔뚝보다 더 두꺼운 랩을 두 손으로 들고 허리를 숙여 파레트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 팔레트 밑단을 랩으로 감싸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점점 허리를 펴고 팔을 올려가면서 팔레트 위에 올려진 물건 전체를 랩으로 칭칭 감았다. 이것을 사람들은 ‘랩을 친다’라고 불렀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게차가 팔레트 위에 있는 물건을 나를 때 물건이 다 쏟아지기 때문에 잘못하면 몇 번이고 랩을 다시 감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랩으로 감겨진 팔레트는 쟈키를 동원해 정해진 장소에 두고 와야만 했다. 이러다 보니 처음 랩을 여러 개 치던 다음 날에는 허리가 아파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육체노동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고생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건 하나를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이 붙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현실에서 직접 체험해보게 된 것이다.

근무시간은 8시간, 하지만

“점심 드시러 가세요!”

관리자가 외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다친다고 말려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달렸다. 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탓이었다. 점심시간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일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점심 메뉴는 그저 그런 반찬들뿐이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왔기에 나는 금세 식판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휴대폰 알람을 몇 개 확인하니 점심시간은 금방 끝나버렸다. 앞으로 여기 온다면 점심시간 때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오후 작업도 오전 작업과 같았다. 오전 4시간 동안 했던 일을 오후에도 4시간을 했다. 오후 5시 50분대가 되자 관리자가 슬슬 마무리하라고 소리쳤고, 나는 주변 사람들을 도와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관리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오늘 미흡했던 사안들을 지적했다. 분명 큰 목소리였지만, 간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출퇴근 명부에 다시 사인하고, 쿠펀치 앱으로 퇴근 처리를 했다. 그리고서는 셔틀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는데 모든 긴장이 그때서야 풀렸는지 버스 안에서 잠들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되었다. 실질 노동 시간은 8시간 정도였지만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니 12시간 넘게 쿠팡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써야만 했다. 누군가는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 낭비를 2년 동안, 학기 중에는 매 주말마다 방학 때는 주 3~5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전날 한 쿠팡 아르바이트 일급을 받았다. 2018년 당시 일일 최저임금은 6만 원이 조금 넘었지만, 고용보험비 등 일부를 공제하고 나니 5만 9천 원대였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인터뷰
월세는 버리는 돈 아니다
부동산 투자는 자신과 나라 둘다 망하는 것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인터뷰 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투자 가치를 가지는 상품,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를만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죄악은 아니겠죠. 하지만 누구나 추구해야하는 절대선도 아닐 겁니다. 

기사를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는 나이, 직업, 학력, 지역 등에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은 분, 내 주변에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직접 찾아가 만나겠습니다. 

지난 3월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에 따른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매도를 이어갔다. 개인투자자들은 달랐다. 삼성전자 등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들은 외국인으로부터 한국 주식시장을 지키는 ‘동학개미’로 불렸다. 선두에는 ‘존봉준’으로 불리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있었다. 

존리 대표는 지난 13일 전화인터뷰에서 부동산에 전체 자산의 80~90%를 투자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고 했다. 투자해야할 자산은 집이 아니라 주식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집을 사는 것보다 월세로 사는 것이 훨씬 싸다”며 “기회비용을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기자가 코로나19 자가격리 중인 탓에 전화로 이뤄졌다. 

 ◆’일하는 자산’에 투자하라 

존리 대표는 집을 사지 말라고 주창하는 투자자로 유명하다. 그의 논리는 명료하다. 주식은 기업을 사는 것이다. 기업은 스스로 일을 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부동산은 어떤가. 일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자산에는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도 그럴까. 이베스트투자증권이 삼성전자 주식과 서울 아파트, 전국 아파트를 연말에 사서 3년 만기 보유했을 때 수익률을 매년 도출하는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삼성전자 평균 수익률은 47.64%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수익률 9.65%를 크게 웃돈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은 6.18%에 불과하다. 존리 대표가 시장이 아니라 종목에 투자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집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전체 자산에 주식은 거의 없고 80%이상이 부동산인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존리 대표는 “더구나 그 중의 대부분이 빚”이라며 “환금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의 특징을 고려하면 경기가 어려워질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겪은 일본과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도 지방에는 빈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말이죠. 출산률도 낮아지고, 인구가 줄면서 집을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점점 줄어들 겁니다.” 

월세를 버리는 돈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오히려 집을 사서 생기는 기회비용을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집에 묶어둘 돈으로 주식을 하라”는게 존리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5%룰’을 말했다. 예를 들어 집값이 10억원일때 1년 월세가 5% 미만이면 월세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달에 월세 400만원은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10억원에 대한 대출이자, 세금 등 유지비, 기회비용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금융문맹’이라고도 지적했다. 

그 역시 월세에 살고 있다. 그의 집은 회사와 가까운 서울 사직동에 있는 아파트다. 아내와 강아지 2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사직동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환경도 고려됐다. 그는 오를 것 같은 집을 고르느라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사는 집 주변은 강아지를 산책시킬 수 있는 길이 있고, 시내만큼 번잡하지 않다”며 “술집도 많지 않고, 공기도 좋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절대 집을 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미국에 있을때 집을 샀다. 문제는 ‘가격’이다. 지금 집 값은 너무 비싸다는게 그의 평가다. 그는 “1990년대 초 미국 집 값이 폭락했었다”며 “집이 안 팔리고 장사가 안 될 때라면 매수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국영수 대신 금융교육 시켜라 

그는 한국의 사교육이 집에 대한 집착을 부르는 요인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만큼 불필요한 것이 없다고도 했다. 존리 대표는 “한국 부모들은 솔직해져야한다”고 꼬집었다. “공부를 시키는 이유가 뭔가요?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 얻어서 부자가 되길 바라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공부를 잘하라고 합니까. 부자가 되라고 해야죠.”

그는 부자가 되는 교육은 ‘국영수’가 아니라 금융이라고 강조했다. 사교육에 한달 월급을 다 쓰는 부모들에게 ‘차라리 그 돈으로  펀드를 사주라’고도 했다. 그는 “유치원부터 들어가는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대학교 졸업때면 10억~20억원의 자금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게 훨씬 낫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도 부동산으로 돈이 쏠리는 현상은 막아야한다고 했다. 일하지 않는 부동산에 돈이 몰리고, 집값이 올라간다고해서 나라가 발전하는 건 아니란 설명이다. “자본이 일하게 해야합니다. 창업이 잇따르고, 거기에 돈이 들어가야 테슬라, 애플 같은 기업이 나옵니다. 일본처럼 부동산에만 투자하면 이런 혁신 기업이 안나옵니다. 일본을 보세요. 소니 이후 어떤 혁신이 있습니까.”

 ◆부자처럼 보이려 말고 부자가 돼라 

젊은이들에게는 ‘집에 집착하지 말라’고 여러차례 조언했다. 그는 “집에 최대한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며 “월급이 적으면 외곽으로 나가서 살고, 출퇴근 시간을 투자하라”고 했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좋은 동네에서 무리하게 살다보면 결국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부자처럼 보이려 하지말고 부자가 되세요.”

그가 생각하는 부동산 투자의 황금비율은 전체 자산의 20~30%다. 주식은 30~40%, 나머지는 현금이나 보험을 가지라고 했다. 그는 “자산이 100억원이라면 20억원짜리 집에 사는게 문제가 없다”며 “5억원 있는데 빚내서 20억원 짜리 집을 사는게 제일 바보”라고 말했다. 

월세로 산다면 이 역시 소득의 20~30% 정도를 사용하라고 했다. 나머지는 주식에 투자해서 노후를 준비하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만큼 월세가 저렴한 곳이 없다”며 “주식을 단기적으로 보지 않고 5~10년으로 생각하며 투자하면 연평균 6% 수익률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집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한다고 했다. 집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고, 그것에서 편안하게 쉬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그런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집은 잠 잘 곳, 편안함을 주는 곳입니다. 월세를 살건 집을 사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젊었을 때부터 집을 사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집에 내 돈이 묶이는 것을 의미하고, 평생 그 빚 갚다가 자기 노후 준비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집에 꼭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세가지는 햇빛, 바람, 비데였다. 집은 쾌적하고 따사로운 환경이면 족하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답변이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 한국경제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구 달서구의회 본회의장 모습.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달서구의회 본회의장 모습.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달서구의회 소속 국민의힘 A 의원이 의회 출입 여성 기자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달서구의회 등에 따르면 A 의원은 “여자 가슴 모양이나 배꼽 모양 등을 보면 그 사람의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인터넷 언론사 여성 기자 B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B 기자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A 의원으로부터 수 차례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슴 색깔, 모양을 봐야 한다, 배꼽 모양을 정확하게 알고 몸을 한 번 딱 섞어보면 그 사람의 관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B 기자가 A 의원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녹취록에 따르면 A 의원은 자신의 발언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A 의원은 “후배한테 농담도 좀 할 수 있지 않느냐”며 “비유를 한 것이지 (성희롱 발언을) 한 적은 없다. 농담이든 어떻게 됐든 (불쾌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달서구의회 여성 의원들은 13일 달서구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희롱 및 여성비하 발언을 한 의원과 이를 무마하려 한 의원은 공개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성 의원들은 김귀화·김정윤·이신자·홍복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화덕·조복희 국민의힘 의원, 안영란 무소속 의원 등이다.

이들은 “의회를 출입하는 기자가 A 의원으로부터 원색적인 성희롱적 발언을 수 차례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A 의원이 다른 여성 의원들에게도 입에 담지 못할 발언을 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B 기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A 의원이 ‘여성 구의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A 의원과 함께 여성 의원들의 비판을 받은 민주당 소속 C 의원은 B 기자에게 전화해 “의회를 대표해서 전화한다. 저를 봐서라도 좀 덮어 달라”며 중재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권근 달서구의회 의장은 “이런 사태가 생긴 것 대해 의장으로서 사과 드린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의장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여성의원들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A 의원을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B 기자도 11일 A 의원을 성희롱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달서구의회는 오는 18일 긴급 임시회를 열고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A 의원과 C 의원의 징계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